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이며, 특정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. 실제 판단은 데이터·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.

들어가며: 사이드 프로젝트가 멈추는 지점

지도를 다루는 사이드 프로젝트는 보통 데이터를 받는 순간 신이 납니다. 그러다 배포 직전에 꼭 한 번 멈칫하게 되죠.

“이 공공데이터, 가공해서 GitHub에 올려도 되는 건가? 라이선스에 변경금지라고 적혀 있던데…”

저는 법정동(法定洞) 경계 데이터를 다루다 정확히 이 지점에서 멈췄습니다. 결론부터 말하면 — 저작권 측면에서는 생각보다 깔끔합니다. 다만 그 결론에 이르는 길에 개발자가 알아두면 좋은 법리가 몇 개 있어서, 제가 만든 korea-bjd-shp-to-csv 프로젝트를 예로 정리해 봅니다.

1. 무엇을 만들었나 — 경계 도형에서 ‘사실값’만 뽑기

브이월드(V-World)에서 받은 법정동 경계 셰이프파일(.shp) 을 입력으로, 분석·검색에 바로 쓸 수 있는 CSV로 변환하는 파이썬 유틸리티입니다. 파이프라인은 세 단계입니다.

flowchart LR
  accTitle: 브이월드 경계 데이터 가공·검증 흐름
  accDescr: 셰이프파일에서 좌표와 반경을 계산하고 주소를 결합한 뒤 리버스지오코딩으로 검증하는 여섯 단계의 흐름
  A["브이월드 .shp<br/>(행정구역 경계 도형)"] --> B["bjd_geometry_to_csv.py<br/>중심좌표 · 외접원 반지름"]
  B --> C["좌표/반경 CSV"]
  C --> D["bjd_csv_to_fulladdress.py<br/>법정동코드 마스터 병합 · full_address"]
  D --> E["bjd_csv_API_verification.py<br/>리버스지오코딩 검증"]
  E --> F["검증된 법정동 딕셔너리 CSV"]

핵심: 좌표계 변환과 외접원 반지름

경계 폴리곤에서 두 가지 ‘사실값’을 계산합니다. 거리 계산은 미터 단위 좌표계(EPSG:5179, Korea 2000 / Unified)에서 하고, 최종 좌표는 위경도(EPSG:4326, WGS84)로 내보냅니다.

gdf_5179 = gdf.to_crs(epsg=5179)                  # 미터 단위로 변환
mbc = gdf_5179.geometry.minimum_bounding_circle() # 최소 외접원(폴리곤)
radius_km = (mbc.area / math.pi) ** 0.5 / 1000    # 면적 A → 반지름 r = √(A/π)

centroid = gdf_5179.geometry.centroid.to_crs(epsg=4326)  # 중심점을 위경도로

radius_km(최소 외접원 반지름)은 “어떤 좌표에서 가장 가까운 법정동 찾기” 같은 작업에서 중심점까지의 거리 − radius_km 식으로 거리를 보정하는 매개변수로 씁니다.

데이터를 다루다 만난 자잘한 함정들

  • 코드 표준화: 읍면동 8자리 코드는 뒤에 00을 패딩해 10자리 표준 코드로 맞춥니다.
  • 오류 분리: 코드가 숫자가 아니거나 법정동명에 한글이 없는 행은 error.csv로 따로 빼냅니다.
  • 중심점이 폴리곤 밖으로 나가는 문제: 도넛·초승달처럼 오목하거나 구멍 뚫린 행정구역은 기하학적 중심점이 경계 밖에 찍힙니다. 그래서 마지막에 브이월드 리버스지오코딩 API로 “이 좌표를 주소로 되돌렸을 때 원래 법정동명이 나오는가”를 대조해 verified 라벨을 답니다.

검증 결과는 꽤 정직했습니다. 좌표가 있는 21,526건 중 21,367건이 원래 주소와 일치(정확도 99.26%), 불일치 건은 살펴보니 대부분 예상대로 도넛·초승달형 행정구역이었습니다.

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: 이 저장소는 경계 도형(.shp) 자체를 담지 않습니다. 도형에서 계산해 낸 중심좌표·반지름·주소 같은 숫자/텍스트만 들어 있습니다. 이 점이 뒤에서 법적으로 의미를 갖습니다.

2. 데이터에 붙어 있던 라벨: CC BY-NC-ND

브이월드에서 「행정구역_리(법정동)」, 「행정구역_읍면동(법정동)」, 「법정동코드」를 받으면 배포조건에 CC BY-NC-ND 가 기재되어 있습니다.

  • BY(저작자표시): 출처를 밝혀라
  • NC(비영리): 영리 목적 이용 금지
  • ND(변경금지): 가공·변형한 결과물을 배포하지 마라

개발자 입장에서 식은땀이 나는 건 ND입니다. 저는 경계 도형을 계산해 좌표 CSV로 바꿨고, 그걸 배포하니까요. 게다가 출처표시(BY)를 했다고 해서 NC·ND가 면제되는 것도 아닙니다. 표면만 보면 “변경금지 위반 아닌가?” 싶죠.

그런데 한 걸음 물러서면 더 근본적인 질문이 보입니다.

애초에 이 경계 데이터가 저작권으로 보호받는 대상이긴 한가?

라이선스는 보호받는 저작물에 조건을 붙이는 장치입니다. 보호 대상이 아니라면, 거기 붙은 조건은 정작 물 곳이 없습니다.

3. 지도는 어디까지 저작권으로 보호되나

저작권법의 대전제는 아이디어·사실은 보호하지 않고, ‘표현’만 보호한다는 것입니다. 그리고 보호받으려면 창작성이 있어야 합니다.

지도에 관해 이 원칙을 또렷하게 밝힌 판결이 있습니다. 이른바 오니온맵 사건입니다.

지도상에 표현되는 자연적 현상과 인문적 현상은 사실 그 자체로서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아니라고 할 것이어서, 지도의 창작성 유무의 판단에 있어서는 그 자연적·인문적 현상을 종래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였는지 여부와 그 표현된 내용의 취사선택에 창작성이 있는지 여부가 기준이 된다 (…) 동일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 한 그 내용 자체는 어느 정도 유사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.

대법원 2010. 4. 15. 선고 2009도14298 판결 (취지 참조)

정리하면 지도에서 저작권이 미치는 영역은 ① 새로운 표현 방식② 무엇을 넣고 뺄지의 취사선택, 이 둘로 상당히 좁습니다. 지형·경계 같은 사실 그 자체는 처음부터 보호 밖입니다. 더구나 이 사건은 형사 사건에서 창작성을 부정한 것이라, 보호 범위를 좁게 본 무게가 가볍지 않습니다.

행정구역 경계는 한술 더 뜹니다. 경계선의 위치는 누가 창작한 표현이 아니라 법령·고시로 정해진 사실에 가깝습니다(저작권법 제7조 제1·2호가 법령·고시 등을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는 취지와도 맞닿아 있죠).

4. 그래서 내 결과물은?

이 프로젝트가 배포하는 것은 경계 도형의 표현이 아니라, 거기서 계산해 낸 사실값입니다.

  • 중심좌표(위경도), 외접원 반지름 → 폴리곤에서 연산으로 도출한 수치
  • 전체 주소(full_address) → 행정안전부 법정동코드 마스터의 명칭을 결합한 텍스트
  • 경계 도형(.shp) 그 자체는 포함하지 않음

즉 보호 대상일 수 있는 ‘표현·취사선택’을 가져온 게 아니라, 보호 밖에 있는 ‘사실’을 추출·집계한 것입니다. 원본의 표현을 감상·소비하는 이용이 아니라 데이터를 계산에 쓰는 변형적(transformative)·비표현적(non-expressive) 이용에 해당합니다. 이런 이용은 설령 일부 보호 요소가 있더라도 공정이용(저작권법 제35조의5) 으로 평가될 여지가 큽니다.

5. 그래도 놓치면 안 되는 단서

“공공데이터니까 무조건 자유”는 위험한 단순화입니다. 저작권법 제24조의2는 국가·지자체의 공공저작물을 원칙적으로 자유이용 대상으로 두면서도, 다음과 같은 예외를 둡니다.

  • 국가안전보장 관련 정보를 포함하는 경우
  • 개인의 사생활·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경우
  • 다른 법률로 공개가 제한되는 경우
  •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저작권 등록되고 국유재산/공유재산으로 관리되는 경우

여기에 더해, 데이터에 제3자가 권리를 가진 부분이 섞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. 그러니 “사실이라 보호 안 된다”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, 대상 데이터가 위 예외에 걸리지 않는지 한 번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.

결론: 깔끔하다, 다만 예의는 갖추자

종합하면 이렇습니다.

행정구역 경계·좌표 같은 사실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가공한 산출물은 저작권의 보호 대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. 설령 일부 보호 요소가 있더라도 비영리·변형적·비표현적 이용이라 공정이용으로 평가될 여지가 큽니다.

그렇다고 “법적으로 안 걸리니 끝”이라고 하긴 멋쩍습니다. 그래서 저는 두 가지를 권합니다.

  1. 예외 점검: 대상 데이터가 제3자 권리·국유재산 등록 등 자유이용 예외에 해당하는지 확인할 것.
  2. 출처·라이선스 게시: 데이터를 제공·관리하는 기관을 존중하는 차원에서, 결과물에 출처를 명시하고 원본 라이선스 표기를 그대로 남길 것.

저는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. 프로젝트 README에 분석 대상 데이터의 출처와 CC BY-NC-ND 표기를 그대로 적고, 코드(MIT)와 데이터의 라이선스를 구분해 두었습니다. “보호 대상으로 보기는 어렵지만, 그렇다고 표기를 지우진 않는다” — 이 균형이 제가 생각하는 적정선입니다.

확인한 공식 원문

법령·자료 기준일은 2026년 7월 23일입니다. 이후 법령, 제공기관의 이용조건 또는 대상 데이터가 바뀌면 판단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.


끝으로 범위를 분명히 해두면, 이 글은 저작권법 판단에 한정한 것입니다. 같은 데이터를 두고 공공데이터법(영리적 이용까지 폭넓게 허용하는 자유이용 원칙)과 공간정보 국외반출 규제(지도를 해외 서버에 올리는 것에 대한 규율)가 함께 얽혀 있고, 이 두 갈래는 저작권 결론과 별개로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.